"연금만 믿다간 낙동강 오리알?" 뉴질랜드 이민자인 내가 연금 뉴스 보고 잠 못 이루는 이유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던 시절이나 처음 영주권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마음 한구석에 은근한 안도감을 품습니다. '그래도 늙어서 나라에서 주는 연금(NZ Super) 받으면, 최소한 먹고사는 걱정 없이 평화롭게 늙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최근 현지 언론 Stuff에 실린 연금 관련 기사("Can you rely on NZ Super for a decent life?")를 읽으며,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씁쓸함과 막막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기사 속 은퇴자들이 말하는 주당 $500대 중반의 연금은 미친 고물가 속에서 숨만 쉬어도 사라지는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잔인한 현실은, 현지에서 태어난 키위들보다 우리 같은 '이민자'들에게 몇 배는 더 가혹하고 차갑게 다가옵니다.
1. 출발선부터 다른 이민자의 자산 축적
이민자로서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입니다. 현지 키위들은 부모 집에 살며 20대 때부터 차곡차곡 경력을 쌓고 자산을 축적합니다.
반면 우리 이민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에너지 넘치는 시절을 '이민 정착'에 다 쏟아붓습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학비, 비자 비용,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고, 언어의 장벽을 넘으며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느라 남들보다 훨씬 늦은 출발선에서 마이너스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겨우 기반을 잡고 나면 어느덧 30대 후반, 40대... 남들보다 자산을 모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가 연금(NZ Super)을 내 노후의 마지막 보루이자 마지노선으로 대단히 크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2. '내 집'이 없는 이민자의 노후는 재앙이다
이번 기사에서 은퇴자들이 입을 모아 말한 가장 무서운 현실은 바로 '주거 형태'였습니다. 젊을 때 집을 사두어 모기지(대출)를 다 갚은 노인들은 연금으로 겨우겨우 버티지만, 평생 렌트(월세)로 사는 노인들은 매주 나가는 수백 달러의 집세 때문에 연금을 고스란히 바치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민자들의 가슴은 철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 그래도 치솟은 뉴질랜드 집값 때문에 내 집 마련의 문턱은 지옥처럼 높아졌는데, 기반이 취약한 이민자가 은퇴 전까지 온전한 내 집을 가질 수 확률은 키위들보다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은퇴 후에도 매주 $500가 넘는 서슬 퍼런 렌트비를 내야 한다면, 국가 연금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버 머니에 불과하며 노후는 곧 생존 투쟁이 됩니다.
3. 이민자를 겨냥한 듯 까다로워지는 제도
출발선도 불리한데, 제도마저 우리 같은 이민자들의 목을 조여 옵니다.
- 거주 기간 20년으로 강화: 원래는 20세 이후 뉴질랜드에 10년만 살면 연금을 줬지만, 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이 기준을 20년으로 늘리는 중입니다. 늦은 나이에 이민 온 사람들은 65세가 되어도 2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이 깎이거나 수령이 밀리는 청천벽력을 맞이하게 됩니다.
- 한국 연금 이중 삭감의 억울함: 한국에서 고생해서 부어놓은 국민연금이 있다면, 뉴질랜드 정부는 그 금액만큼 뉴질랜드 연금에서 차감(Direct Deduction)하고 지급합니다. 이민자 입장에서는 양쪽 나라에 성실히 세금과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결국, 더 지독한 각자도생뿐
나라에 세금 꼬박꼬박 내며 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복지의 안전망이 이토록 얇고 차갑다는 사실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뉴질랜드의 국가 연금은 품격 있는 은퇴 생활을 보장하는 요술 램프가 아니라, "길거리에 나앉지 않게만 해주는 최소한의 밧줄"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이 타국 땅에서 이민자로 당당하고 평온하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현지인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독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냉정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오늘도 비자 걱정, 렌트비 걱정, 물가 걱정에 치열한 하루를 보내신 동료 이민자 여러분. 국가가 내 노후를 알아서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키위세이버(KiwiSaver)를 정비하고, 작더라도 내 집 마련을 위한 아주 구체적인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타지에서 외롭게 분투하는 우리 모두의 안전한 노후를 위해, 오늘은 서글픔을 지우고 더 독하게 지갑을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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