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아이를 키우고 현지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한국과는 사뭇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 습관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 뉴질랜드 사람들의 투철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의 '신고 정신'입니다.

하루는 아들 친구 엄마의 차를 타고 이동할 때였습니다. 도로 위에서 어떤 차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급하게 끼어들거나, 약간 갈지자로 위험하게 운전을 하더군요. 저는 속으로 '어휴, 운전 험하게 하네' 하고 넘어가려는데, 옆자리에 있던 키위 엄마는 망설임 없이 신고를 하더라구요. 그리고는 아주 침착하고 구체적으로 상대 차량의 번호판, 차종, 색상, 그리고 현재 주행 중인 도로명을 경찰에 리포트하더군요.



처음에는 '와, 정말 칼 같구나' 싶었지만, 살다 보니 이건 이 엄마 한 명의 유별난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신고'에 진심인 걸까요?

1. 일러바치기가 아니다, "공동체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인식

한국 정서에서 '신고'는 왠지 얄미운 밀고자(Tattletale) 같은 느낌을 주거나,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미세하게 존재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나한테 직접 피해 준 것도 아닌데 뭘" 하고 넘어가기 일쑤죠.

하지만 뉴질랜드(Kiwis) 사회에서 신고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내가 침묵하면 다음 피해자는 내 이웃이나 내 가족이 된다"는 연대 의식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난폭 운전자를 신고하는 것은 그 사람을 벌주기 위해서라기보다, 혹시 모를 음주 운전이나 대형 사고로부터 무고한 이웃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2. 뉴질랜드에만 있는 독특한 신고 시스템들

이들의 투철한 신고 정신 뒤에는,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시스템이 든든하게 받치고 있습니다.

  • 도로 위의 감시자, *555 서비스: 뉴질랜드에는 긴급 범죄 신고인 111 외에도 '*555'라는 아주 유명한 교통불편/안전 신고 번호가 있습니다. 급박한 사고는 아니지만 난폭 운전, 위험한 낙하물, 도로 위 장애물 등을 발견했을 때 모바일로 바로 신고하는 무료 서비스입니다. 현지인들의 휴대폰 단축키에는 항상 이 번호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https://www.police.govt.nz/advice/driving-and-road-safety/report-road-incident-unsafe-driver



  • Snap Send Solve (스냅 센드 솔브): 동네 길을 가다가 깨진 보도블록, 불법 투기된 쓰레기, 고장 난 가로등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위치와 함께 앱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해당 지역 카운실(Council)로 즉시 접수되어 처리됩니다. "내 동네의 문제는 내가 감시하고 내가 고친다"는 자치 정신의 끝판왕입니다.
    https://www.snapsendsolve.com/


  • Neighborhood Support (이웃 사촌 보안관): 뉴질랜드 주택가를 걷다 보면 대문에 노란색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웃끼리 서로의 집을 관찰해 주며, 수상한 사람이나 차량이 서성이면 단체 톡방이나 경찰에 즉시 공유하는 로컬 보안 시스템입니다.
    https://www.neighbourhoodsupport.co.nz/



  • 지속적인 연기, 매연, 불쾌한 냄새 등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 불이 즉각적으로 위험하진 않지만 마당(backyard)에서 쓰레기나 유해 물질을 태워 매연과 악취 피해를 주고 있다면, 오클랜드 카운슬(Auckland Council)의 오염 핫라인(Pollution Hotline)으로 신고하시면 됩니다. 카운슬에서는 신고를 접수하면 불법 물질을 태우고 있는지, 과도한 연기가 이웃집으로 넘어가 피해를 주는지 조사하게 됩니다.



    저는 이전에 이웃집에서 마당에서 쓰레기를 밤이고 낮이고 태워서 냄새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바로 신고를 했습니다. 전화할때 모든것은 익명으로 처리가 되고, 카운슬 직원이 바로 현장으로 출동해서 제지를 하더라구요. 저는 같은집을 2번 신고를 했는데 다신 안하더라구요! 이웃집과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신고하세요! 
    오클랜드 카운슬 오염 핫라인: 09 377 3107 (연중무휴 24시간 운영)
  • 밤늦게 들리는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 Noise Control (소음 단속):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 이웃집에서 새벽까지 광란의 파티를 벌이며 베이스 음을 둥둥 울린다면 참지 말고 카운실의 Noise Control에 전화하시면 됩니다.

    https://www.aucklandcouncil.govt.nz/en/licences-regulations/noise/complain-about-noise.html




  • 신고를 하면 전담 단속반(Noise Control Officers)이 한밤중에도 직접 해당 집으로 출동합니다.
    1차 경고를 준 뒤에도 소음이 줄어들지 않으면, 경찰을 대동해 파티장의 스테레오 장비나 스피커를 그 자리에서 압수(Seize)해 갈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이민자로서 배우게 되는 '쾌적한 사회'의 조건

처음에는 이들의 즉각적인 신고 문화가 야박하게 느껴지거나 숨이 막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도 실수로 깜빡이 한 번 안 켰다가 신고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생기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됩니다. 뉴질랜드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비결은 단순히 법이 엄격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 감시자이자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들의 '오지랖' 덕분에 도로는 조금 더 안전해지고, 동네 놀이터는 깨끗하게 유지되며, 이웃 간의 기본 매너가 지켜지는 셈입니다.



💡 룰을 지키는 깐깐함이 만드는 평화

"이상하면 바로 신고한다."

이 투철한 시민의식은 뉴질랜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이제 저도 운전하다가 도를 넘는 난폭 운전 차량을 보면, 눈살만 찌푸리고 지나치기보다 슬며시 블루투스 전화를 켜게 됩니다. 내가 탄 도로, 내 아이가 걷는 인도를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