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뉴질랜드의 청년 실업률은 17%를 넘어섰고, 매년 수만 명의 젊은 키위들이 호주나 영국 등 해외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역대급 엑소더스(Exodus)’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미디어에서는 암울한 경제 지표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시장 반대편에 있는 기업과 고용주, 면접관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저는 현재 뉴질랜드 현직 면접관으로 수많은 디자이너의 이력서를 직접 검토하고 있습니다. 최근 구인 공고을 올린 후 딱 1주일 만에 무려 400통의 이력서가 쏟아지는 것을 보며, 현장의 살벌한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했습니다.

그 400통의 이력서가 가진 충격적인 데이터와, 왜 뉴질랜드 회사들이 신입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지 면접관의 시선에서 아주 냉정하게 짚어보겠습니다.

📊 1. 400통의 이력서, 그 실체를 뜯어보니

1주일간 들어온 400통의 지원서를 분류해 보니 현재 뉴질랜드 취업 시장의 왜곡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 50% (약 200통): 해외 지원자 (Overseas Applicants) 절반은 뉴질랜드에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비자 스폰서십을 주면 날아가겠다"고 지원한 해외 경력자들입니다. 당장 현지에서 소통하며 일할 사람이 필요한 회사 입장에서는 검토 대상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습니다.

  • 25% (약 100통):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신입 (Fresh Graduates) 나머지 절반 중 대부분은 뉴질랜드 현지 대학이나 디자인 스쿨을 막 졸업하고 "열심히 배우겠다"며 열정 하나로 지원한 주니어들입니다.

  • 25% (약 100통): 현지 경력자 및 주니어 결국 회사가 실제로 고려해 볼 만한 풀(Pool)은 전체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 2. 면접관의 고백: "솔직히 졸업생은 포트폴리오도 안 보고 거릅니다"

"한국이야 대학 간판이나 학력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이 동네 뉴질랜드에서는 무조건 '포트폴리오'가 전부입니다."

뉴질랜드 취업 시장의 대원칙입니다. 면접관들은 지원자가 오클랜드 대학을 나왔든, 듣지도 못한 시골 전문대를 나왔든 학력 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오직 "이 사람이 당장 내일부터 우리 회사에 앉아 돈을 벌어다 줄 실전 결과물(포트폴리오)을 낼 수 있는가"만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력서에서 경력이 전혀 없는 '갓 졸업한 신입'인 경우, 미안하지만 그 중요한 포트폴리오 링크조차 클릭하지 않고 바로 걸러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학교 과제 수준의 포트폴리오는 실전에서 아무 쓸모가 없으며, 회사에는 그걸 가르쳐줄 시간과 자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고금리와 경기 침체 장기화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기에는, 사수(Senior)가 신입의 뒤를 쫓아다니며 폰트 크기 맞추는 법, 실무 가이드라인 확인하는 법 등을 기초부터 가르칠 여유가 없습니다.

최소한의 실력과 눈치, 즉 '스스로 가벼운 업무 하나는 끝마칠 수 있는 아주 작은 경력'이라도 있는 사람을 선호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열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신입이 속출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 [💡 블로그 주인장의 리얼 경험담: "저도 밤마다 싸웠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뉴질랜드에서 집을 구매한 후 "돈 들여 계속 고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그냥 꾹 버티다가 팔 것인가"를 두고 매일 밤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장본인입니다. (주변 조언도 반반이었죠.) 결국 저는 힘들더라도 '내가 살기 편하고 보기에도 예쁜 고치면서 살자' 주의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웬 집 수리 얘기냐고요? 취업 시장도 똑같기 때문입니다. 고치고 다듬는 과정은 매주 돈이 들고 고달픕니다. 하지만 준비된 집이 폭우에도 끄떡없듯, 주니어 시절의 고달픈 실무 경험 축적만이 이 살벌한 뉴질랜드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무기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력서 400통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학생' 티를 벗어던져야 합니다.

✈️ 3. 경력만 찾는 사회, 뉴질랜드 청년들이 배를 타는 이유

"신입은 안 뽑아주는데, 경력은 대체 어디서 쌓으라는 말인가요?"

이 질문에 뉴질랜드 사회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 것이죠. 대학을 졸업해도 인턴십이나 주니어 자리가 아예 전멸해 버렸으니, 청년들은 첫 커리어를 시작할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제가 면접관의 자리에서 이 무자비한 이력서 스크리닝을 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아, 이래서 뉴질랜드 젊은 애들이 다 호주로, 해외로 도망가는구나"를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호주나 영국 같은 더 큰 시장은 주니어들을 포용할 만한 기업의 기초 체력이 있는 반면, 뉴질랜드는 내수 시장이 너무 작아 기성세대와 경력자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4. 그럼에도 뉴질랜드에서 첫 직장을 구해야 하는 주니어들에게

만약 당신이 이제 막 졸업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주니어라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라는 이력서 문구는 당장 지우셔야 합니다. 학력으로 밀어붙일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면접관의 마우스를 멈추게 하려면 경력 칸에 단 한 줄의 '실전 상업 경력'이라도 만들어내야 합니다.

  • 학교 과제로 가득 찬 포트폴리오는 과감히 버리세요. 로컬 스몰 비즈니스(한인 마트든, 친구의 카페든)의 브랜딩을 공짜로라도 해주고 '실전 상업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 첫 페이지에 넣으세요.

  • 학사 학위(Degree)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비즈니스 필드에서 구르고 돈을 벌어다 줄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증명입니다. 단 3개월짜리 프리랜서 계약 건이라도 이력서에 박혀있는 신입은 포트폴리오가 열립니다.

🎯 결론: 고용주와 구직자 모두가 아픈 뉴질랜드의 오늘

"실력 있는 사람만 쓰겠다"는 기업의 생존 전략을 탓할 수도 없고, "기회조차 안 주냐"는 청년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도 없는 참 씁쓸한 요즘입니다. 학력 대신 철저한 실력 중심 사회인 뉴질랜드에서, 숙련된 자국의 젊은 인재들이 첫 발을 떼지 못해 hollowing out(공동화)되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참 큰 상처입니다.

오늘도 400통의 이력서를 닫으며, 부디 이 지독한 취업 한파가 걷히고 젊은 재능들이 뉴질랜드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