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스톡에서 하루 종일 소스 찾던 디자이너, 이제는 프롬프트를 쓴다
생성형 AI가 완전히 바꿔버린 현직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광고 비주얼 하나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노가다’ 그 자체였습니다. 괜찮은 메인 이미지 한 장을 만들려면 일단 셔터스톡(Shutterstock)부터 켰습니다. 머릿속에 대충 원하는 그림은 있는데, 딱 맞는 사진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면 비슷한 배경을 찾고, 제품과 어울릴 만한 테이블을 찾고, 손이 필요하면 손을 찾고, 빛이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이미지를 찾고….
어떤 때는 광고 이미지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소스 이미지 10개, 20개를 다운로드하는 것도 흔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Shutterstock 월 360개 다운로드 플랜을 사용했는데, 그것조차 모자랄 때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단합니다. 이미지를 찾는 데 몇 시간을 쓰고, 겨우 마음에 드는 걸 찾으면 그때부터 진짜 일이 시작됐으니까요.
머리카락 한 올까지 확대해서 누끼를 따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찍힌 사진들의 빛 방향을 맞추고, 그림자를 만들고, 색온도를 맞추고, Perspective를 조절하고….
Photoshop 창에는 어느 순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Layer가 수십 개, 많게는 백 개 가까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짧으면 하루. 조금 복잡한 광고 비주얼은 3~4일.
모니터 앞에서 눈이 벌게질 때까지 붙잡고 있어야 겨우,
“음… 이제 좀 자연스럽네.” 싶은 이미지 한 장이 나왔습니다.
그게 너무 당연했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셔터스톡보다 먼저 AI를 연다
불과 몇 년 사이 제 작업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오르면 가장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진이 Shutterstock에 있을까?’
지금은 다릅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AI가 내가 생각한 장면을 만들어줄까?’
이미지를 찾는 작업이 이미지를 설명하는 작업으로 바뀐 겁니다.
예를 들어 예전 같으면 어두운 바(Bar) 위에 제품이 놓여 있고, 뒤에서 강한 빛이 들어오면서 유리잔에 반사광이 생기는 광고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고 해봅시다.
먼저 바 테이블 사진을 찾습니다.
그다음 제품 사진을 따서 올리고, 어울리는 칵테일 이미지를 찾고, 빛이 안 맞으면 또 다른 사진을 찾고, 유리잔의 Reflection을 만들고….
마음에 드는 소스를 못 찾으면?
내 머릿속에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도 구현을 못 하는 겁니다.
특히 스튜디오 촬영이 필요한 수준의 비주얼은 더 그랬습니다.
“아, 이건 촬영해야 되는데.”
“이 정도는 3D로 만들어야 되는데.”
그렇게 아이디어를 포기하거나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추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벽이 정말 많이 사라졌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AI가 일단 눈앞에 보여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말하면 되니까요.
“빛을 조금 더 왼쪽에서.”
“제품은 건드리지 말고 배경만 어둡게.”
“반사광이 너무 강해. 조금 자연스럽게.”
“카메라 앵글은 그대로 유지해.”
예전에는 Photoshop에서 몇 시간 동안 씨름했을 일을 이제는 말로 수정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가끔 저도 신기합니다.
디자이너의 손이 빨라진 정도가 아니라, 디자인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건, 상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AI를 사용하면서 제가 가장 좋다고 느끼는 부분은 사실 ‘시간 절약’만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했던 아이디어를 이제는 한번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는 것.
저는 이게 정말 큽니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멋진 장면이 떠올라도, 촬영비가 너무 비싸거나, 적당한 Stock Image가 없거나, 3D 외주가 필요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결국 스스로 타협했습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그런데 AI는 적어도 한번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처음 아이디어를 생각할 때 제약을 덜 두게 됩니다.
“이게 가능할까?”가 아니라 “일단 만들어보자.”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디자인 일을 하면서 느꼈던 어떤 목마름이 해결되는 기분도 있습니다.
그동안 돈과 시간 때문에 못 했던 것들을 이제는 내 자리에서 직접 시도해 볼 수 있으니까요.
이건 디자이너 입장에서 정말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신나게 AI를 사용하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반대편에서 묘한 불안감이 올라옵니다.
“근데… 이제 나 아니어도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요즘 회사에서는 디자이너만 AI를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Marketer도 쓰고,
Brand Manager도 쓰고,
Sales Team도 씁니다.
가끔 회의에 들어가면 누군가 이미 AI로 이미지를 만들어 와서 화면에 띄웁니다.
그리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이거 AI로 5분 만에 대충 만들어봤는데, 이런 느낌으로 더 멋있게 해주세요.”
웃으면서 “Sure!”라고 대답하지만 속에서는 순간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이상한 부분도 있고, 브랜드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첫인상이 꽤 그럴듯하다는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전문 디자이너가 몇 시간 동안 Photoshop을 붙잡고 있어야 만들 수 있었던 수준의 이미지를 이제 디자인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몇 분 만에 만들어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디자이너를 고용해야 할 이유는 뭘까?’
저 역시 AI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AI 때문에 내 직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400개의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최근 디자이너 채용을 하면서 일주일 만에 약 400개의 지원서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Portfolio를 봤습니다.
그리고 요즘 Portfolio를 보면 확실히 예전보다 화려합니다.
Mockup도 멋지고, 이미지도 멋지고, Presentation도 그럴듯합니다.
AI와 Template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예쁜데 기억에 남지 않는 Portfolio도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와, 잘했네” 하는데 몇 페이지 넘기다 보면 궁금해집니다.
왜 이 이미지를 사용했지?
왜 이 Typeface를 선택했지?
이 Brand가 해결하려던 문제는 뭐였지?
그래서 이 디자인으로 실제로 무엇이 좋아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그때 조금 안심(?)이 됐습니다.
AI가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은 정말 무섭게 좋아졌지만,
좋아 보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직 같은 말이 아니구나.
어쩌면 디자이너의 ‘손’이 아니라 ‘눈’이 더 비싸지는 시대
예전에는 디자이너의 실력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로 많이 판단했습니다.
Photoshop을 얼마나 잘하는지.
Illustrator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
Retouching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하는지.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 질문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떤 결과물을 선택할 것인가.
이게 정말 우리 브랜드에 맞는가.
AI가 이미지 100장을 만들어주는 시대에는 어쩌면 만드는 능력보다 99장을 버릴 수 있는 눈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릅니다.
저도 실제로 AI를 사용하면서 수십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결국 한 장도 사용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듯하지만 뭔가 이상해서.
예쁘지만 우리 브랜드 같지 않아서.
멋있지만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와 맞지 않아서.
AI는 그걸 모릅니다.
결국 마지막에,
“아니야, 이건 우리 브랜드가 아니야.”
라고 말하는 건 아직 사람입니다.
셔터스톡을 뒤지던 디자이너에서 AI를 디렉팅하는 디자이너로
가끔 예전 Photoshop 파일을 열어봅니다.
Layer 87.
Layer 87 copy.
Layer 87 copy 2.
Mask.
Curves.
Shadow final.
Shadow final 2.
진짜 저걸 어떻게 다 했나 싶습니다. ㅎㅎ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솔직히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AI는 너무 편하고, 너무 빠르고, 무엇보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넓혀줬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조금 무섭습니다.
내가 10년, 20년 동안 어렵게 익혀온 기술 중 일부가 누군가에게는 이제 프롬프트 한 줄이면 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저는 ‘AI가 디자이너를 없앨까?’라는 질문보다 다른 질문을 더 많이 합니다.
AI가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잘하는 디자이너여야 할까?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Photoshop을 누구보다 빨리 다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미지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AI에게 정확하게 지시하고, 쏟아지는 결과물 중에서 제대로 된 것을 골라내고, 마지막에는 브랜드의 언어로 완성하는 사람.
어쩌면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제작자’보다 디렉터에 훨씬 가까워지는 직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AI가 이미지를 너무 쉽게 만들어주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손보다 디자이너의 생각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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