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 Designer in New Zealand
🇳🇿 Designer in New Zealand | AI · Branding · Packaging · K-직장인 - New articles every week

어제는 같이 먹었는데 오늘은 나만 빼고 갔다?

눈치를 버리고 온전한 휴식을 누리는 독립적 점심 문화론

뉴질랜드 회사에서 처음 알게 된 ‘혼자 먹는 점심’의 의미

뉴질랜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입사하고 첫 2주 정도는 동료들과 거의 매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누군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Lunch?”

그러면 몇 명이 같이 나가서 근처 카페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속으로 조금 안심했다.

‘아, 여기도 똑같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점심은 대부분 동료들과 함께 먹었으니까.

그런데 2주 정도 지나자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지?”

전날에도 동료 세 명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분위기도 좋았다.

같이 웃고 떠들면서 별문제 없이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점심시간.

어제 같이 밥을 먹었던 사람 중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둘이 그냥 나가는 게 아닌가.

나는 당연히 누군가 나에게도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었다.

둘은 그냥 나갔다.

나는 모니터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 뭐지?’

그리고 K-직장인의 눈치 레이더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왜 나한테 같이 가자는 말을 안 하지?’

‘어제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나?’

‘혹시 내가 너무 말이 없었나?’

‘아니면 내가 불편했나?’

‘설마… 나 왕따인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둘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을 뿐인데 나는 혼자 앉아서 어제 점심시간에 했던 대화까지 복기하고 있었다.

‘내가 뭐 이상한 말 했나…?’

정말 혼자 소설을 썼다.

그런데 다음 날은 더 이상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이번에는 아예 모두가 흩어졌다.

한 명은 혼자 점심을 들고 밖으로 나갔고,

누군가는 자기 자리에서 먹었고,

또 다른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가요.”

라는 말도 없었다.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한국 회사에서 내가 경험했던 점심시간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대리였다.

11시 반쯤 되면 슬슬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과장님, 부장님, 점심 드시러 가시죠!”

하고 다 같이 우르르 나갔다.

무엇을 먹을지도 어느 정도 같이 정했다.

누군가는 국밥이 먹고 싶고,

누군가는 돈가스가 먹고 싶고,

누군가는 사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도 결국 다 같이 갔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이상한 공식 하나가 있었던 것 같다.

같이 점심을 먹는다 = 사이가 좋다.

반대로,

나를 빼고 먹는다 = 뭔가 문제가 있다.

그 공식을 그대로 가지고 뉴질랜드 회사에 들어왔으니, 동료 두 명이 나만 빼고 점심을 먹으러 간 것이 꽤 큰 사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알고 보니 첫 2주가 특별했던 거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싫어하게 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처음 2주 동안 나와 계속 같이 점심을 먹어준 것이 신입인 나를 위한 배려에 가까웠던 것이다.

새로 들어온 직원이 혼자 밥을 먹으면 어색할까 봐,

주변 식당도 모르고 회사 생활도 낯설 테니 자연스럽게 같이 먹어준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하자 모두 다시 원래 자기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제야 회사 사람들의 점심시간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정말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마음 맞는 사람과 같이 나간다.

누군가는 혼자 먹는다.

누군가는 점심시간에 산책을 한다.

누군가는 쇼핑을 하러 간다.

누군가는 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또 달라진다.

어제 나와 같이 먹었다고 오늘도 같이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혼자 먹었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점심시간까지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 문화를 이해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점심 메뉴를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가 없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억지로 대화하지 않아도 됐다.

오전 내내 회의를 해서 머리가 복잡한 날이면 혼자 조용히 밥을 먹어도 된다.

날씨가 좋으면 밥을 빨리 먹고 밖으로 나가 걸어도 된다.

볼일이 있으면 쇼핑센터에 다녀와도 된다.

누구도,

“오늘 왜 같이 안 먹어요?”

라고 서운해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게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반대로 느껴졌다.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방식일 수도 있겠구나.

같이 있고 싶으면 같이 있고,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는 것.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생각해보면 굉장히 편한 관계였다.

혼자 밥 먹는 게 이렇게 편한 일이었나

이제는 나도 점심시간에 혼자 있는 날이 많다.

회사 사람들과 같이 먹고 싶은 날에는 같이 먹는다.

누군가,

“Lunch?”

하고 물어보면 기분에 따라 따라가기도 한다.

그런데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그냥 혼자 먹는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혼자 먹는 점심이 꽤 좋다.

오전 내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회의를 하다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생긴다.

그 30분, 1시간 동안은 굳이 웃지 않아도 되고,

대화 소재를 찾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메뉴에 맞출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처음에는 외롭게 느껴졌던 시간이 지금은 오히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 되었다.

문제는 문화가 아니라 내 머릿속의 ‘눈치’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긴다.

동료 두 명이 점심 먹으러 나간 것뿐인데,

나는 혼자 앉아서 인간관계의 위기를 분석하고 있었으니까.

‘어제 내가 뭐 잘못했나?’

‘나 싫어하나?’

‘왜 나한테 말 안 했지?’

그 사람들은 아마 아무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둘이 그날 같이 밥을 먹고 싶어서 나갔을 뿐이다.

뉴질랜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는 한국에서 익숙해진 기준을 가지고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눈치를 보는 순간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알게 됐다.

모든 행동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같이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혼자 밥을 먹는다고 외로운 사람도 아니었다.

지금은 누군가 나만 빼고 점심을 먹으러 가도 아무렇지 않다

이제는 동료 두 명이 내 앞에서,

“우리 점심 먹으러 갈 건데…”

하고 둘이 나가도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속으로 생각한다.

‘오케이, 오늘은 혼자 조용히 먹어야겠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그 사람들과 같이 먹을 수도 있다.

아무도 전날 일을 설명하지 않는다.

나 역시 묻지 않는다.

그게 이곳에서 내가 배운 꽤 편안한 관계의 방식이었다.

물론 뉴질랜드의 모든 회사가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팀마다 점심 문화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회사에서는 점심시간만큼은 누구와 함께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는, 정말 개인적인 시간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그 자유를 몰라서 서운했고,

알고 나서는 오히려 좋아졌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분이 어느 날 이런 일을 겪는다면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같이 밥을 먹었던 동료가 오늘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가버렸다고?

괜찮다.

당신이 뭘 잘못한 게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냥 그 사람은 오늘 그 사람과 밥을 먹고 싶은 것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도 똑같이 하면 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고.

점심시간 정도는 정말로 내 마음대로. 뉴질랜드에 와서야 나는 조금 늦게 알았다.

휴식시간까지 꼭 ‘같이’ 보내야 하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