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스펙’, 뉴질랜드는 ‘누가 너를 아는가’ ... 취업 시장에서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
한국은 ‘스펙’, 뉴질랜드는 ‘누가 너를 아는가’ — 취업 시장에서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
뉴질랜드에서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낯설었던 것 중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거 인맥 채용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직접 사람을 뽑는 입장이 되어보니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이력서 한 줄이 중요했다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스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학점은 몇 점인지.
영어 점수는 어떤지.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는지.
자격증은 몇 개인지.
이력서 한 줄을 더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쓰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런 환경에서 취업을 준비했고 회사생활을 했다.
그래서 처음 뉴질랜드에 와서 구직을 시작했을 때도 당연히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CV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잘 정리하고,
내 경력을 최대한 화려하게 보여주면 된다고.
물론 이런 것들은 지금도 중요하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일하면서 한 가지를 더 알게 됐다.
이곳에서는 ‘누가 당신을 알고 있는가’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낯설었다.
“우리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뉴질랜드에서 Job Application을 작성하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만난다.
“Do you know anyone currently working at this company?”
처음 이 질문을 봤을 때 조금 의아했다.
‘이걸 왜 물어보지?’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괜히 인맥을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 회사생활을 해보니 이유를 조금 알게 됐다.
뉴질랜드는 생각보다 좁다.
같은 업계에서 몇 년 일하다 보면 건너건너 아는 사람이 정말 자주 나온다.
“전에 어디서 일했어요?”
회사 이름을 말하면,
“아, 거기 누구 알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기존 직원과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러 온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 걸 보면서 생각했다.
‘여기도 결국 인맥이구나.’
그런데 내가 직접 면접을 하고 사람을 뽑는 입장이 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면접관이 되어보니 알게 된 것
내가 지원자였을 때는 회사가 왜 경력보다 ‘누가 이 사람을 아는가’를 중요하게 보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반대편에 앉아 수많은 CV와 Portfolio를 보기 시작하니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력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서 일했는지,
몇 년 경력이 있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이 사람은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인가?
마감을 지키는 사람인가?
피드백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는 사람인가, 이야기하는 사람인가?
이런 건 CV 한 장만 보고 알기 어렵다.
면접을 잘한다고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면접에서는 긴장해서 말을 잘 못했는데 막상 같이 일하면 정말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이 와서,
“나 이 사람이랑 전에 일해봤는데 정말 괜찮았어.”
라고 말해주면 솔직히 귀가 솔깃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추천은 ‘빽’이라기보다 불확실성을 조금 줄여준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빽’과 뉴질랜드에서 경험한 Referral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물론 추천이라고 해서 무조건 공정한 것도 아니고,
추천받은 사람이 항상 좋은 직원인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무 관계도 없는 지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회사 입장에서 추천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정보가 조금 더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신뢰하는 직원이,
“저 사람과 3년 같이 일했는데 정말 책임감 있어.”
라고 이야기한다면 적어도 하나의 추가 정보가 생긴다.
Reference Check도 같은 이유로 중요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채용 과정에서 이전 Manager나 동료에게 실제 업무 태도를 확인하는 경우가 흔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결국,
‘이 사람이 우리 팀에 들어왔을 때 잘 일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를 판단해야 한다.
추천은 그 판단을 도와주는 자료 중 하나다.
학벌은 정말 안 보게 되더라
내가 직접 CV를 보기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도 있다.
학교를 거의 안 보게 됐다.
처음 몇 초 동안 내가 보는 것은 보통 다른 것이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지금 어느 정도 레벨인지.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 있는지.
경력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그리고 디자인 직무라면 결국 Portfolio를 본다.
물론 특정 전문직에서는 학력이나 자격이 아주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실제로 디자이너 후보들을 검토하면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지?’
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던 적은 거의 없다.
이게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했던 나에게는 꽤 재미있는 변화였다.
예전에는 이력서의 학교 이름 한 줄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사람을 뽑으면서 그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것을 본다.
“이 사람이 들어오면 우리 팀에서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질문이다.
뉴질랜드의 ‘Hidden Job Market’은 실제로 존재한다
처음에는 ‘뉴질랜드에서는 인맥으로 취업한다’는 이야기를 조금 과장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Careers NZ에서도 아예 Hidden Job Marke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공개적으로 광고되는 일자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구직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업계 사람들과 연결되고, 전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안내한다. Careers NZ 자료에서는 약 70%의 일자리가 이런 네트워크와 연결을 통해 채워지는 hidden job market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나도 꽤 놀랐다.
그렇다고 SEEK이나 LinkedIn의 Job Posting을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공개 채용 역시 당연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만 보고 있으면 내가 접근하지 못하는 기회가 상당히 많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구직할 때는 Apply만 하는 사람보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유리한 순간이 분명히 생긴다.
그런데 문제는 이민자에게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여기서 해외에서 온 사람에게 가장 답답한 문제가 생긴다.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경력도 있고 아는 사람도 많았는데,
뉴질랜드에 도착하는 순간 Network가 거의 0이 된다.
아는 회사도 별로 없고,
업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Reference를 부탁할 현지 Manager도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럼 나는 시작부터 불리한 거 아닌가?’
어느 정도는 맞다.
그래서 첫 현지 경력을 만드는 게 어렵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은 네트워크가 꼭 오래된 친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도 Network가 될 수 있다.
이전에 같이 작은 프로젝트를 했던 사람도 그렇고,
업계 행사에서 몇 번 얼굴을 본 사람도 그렇다.
LinkedIn에서 연결된 사람이 몇 년 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회를 알려주기도 한다.
Network는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취업을 준비한다면 이렇게 할 것 같다
만약 지금 뉴질랜드에 처음 와서 다시 구직해야 한다면 예전처럼 온라인 지원만 수십 개씩 넣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Job Application은 계속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람을 만나려고 할 것 같다.
LinkedIn에서 관심 있는 회사 사람들을 Follow하고,
업계 Event가 있다면 가보고,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Connection을 유지하고,
누군가 나에게
“What do you do?”
라고 물으면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짧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 같다.
Careers NZ도 networking 방법으로 친구나 가족에게 구직 중임을 알리거나, industry meetup과 event에 참석하고, professional organisation에 참여하고, 관심 있는 회사 사람에게 informational interview를 요청하는 방법 등을 권하고 있다.
이런 행동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다.
특히 나는 누군가에게 갑자기,
“커피 한 잔 하실래요?”
하면서 내 커리어 이야기를 꺼내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 해보면 꼭 취업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듣고,
업계 이야기를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맥의 진짜 힘은 취업할 때보다 그 이전에 만들어진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하나다.
취업이 급해진 뒤 갑자기 Network를 만들려고 하면 어렵다.
평소에 만들어두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 가끔 안부를 묻고,
LinkedIn에서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내가 한 좋은 작업이 있으면 공유하고,
도움을 받을 때만 연락하지 않고 내가 도울 수 있을 때도 도와주는 것.
이런 것들이 쌓인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회사에서 사람을 찾게 된다.
그때 갑자기 내 이름이 생각날 수도 있다.
“아, 그 사람 괜찮았는데.”
아마 Referral이라는 것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다.
결국 ‘누가 너를 아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였다
처음에는 뉴질랜드 취업 시장을 보면서,
‘결국 여기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구나.’
라고 조금 삐딱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면접관이 되어보고 여러 사람과 일을 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
문제가 있을 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그리고 기회가 생겼을 때 한번쯤 이름을 떠올리고 싶은 사람.
그 평판은 LinkedIn Connection 숫자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같이 일했던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뉴질랜드에서 Networking이라는 말을 들으면 더 이상 단순한 인맥 쌓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그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는 과정.
오히려 그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한국에서 내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이력서의 한 줄을 늘리기 위해 애썼다면,
뉴질랜드에서는 경력이 쌓일수록 다른 자산 하나가 같이 늘어난다.
“저 사람 괜찮아.”
누군가가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것.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강한 스펙도 별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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