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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데 출근했더니 사장님이 집에 가라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배운 병가 문화

아픈데 출근했더니 사장님이 집에 가라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배운 병가 문화

아픈데 출근했더니 사장님이 집에 가라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배운 병가 문화

뉴질랜드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말 지독한 목감기에 걸렸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기침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질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집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이상하게 몸에 밴 게 하나 있었다.

아픈 것과 출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

열이 조금 나도 출근하고, 목이 아파도 출근하고, 몸이 무거워도 일단 회사에 가는 것. 아프더라도 일단 출근하고 아프자!! 그게 성실한 직원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일했었다.

아프다고 쉬면 괜히 미안했고, 내가 없는 동안 다른 사람이 일을 떠안는 것 같아 찝찝했다.

무엇보다 아픈데도 출근하는 사람이 조금 더 성실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도 고민하지 않았다. 약을 챙겨 먹고 회사에 갔다.

‘나 이렇게 아픈데도 출근했어요’

사무실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상태가 생각보다 심했다.

쿨럭. 쿨럭. 퀙퀙. 

조용한 사무실에서 내 기침 소리만 계속 울렸다. 목은 아프고 머리도 멍했지만 나는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계속 일을 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마음 한쪽에는 조금 이상한 자부심도 있었다.

‘나 이렇게 아픈데도 회사 나왔다.’ ‘그래도 맡은 일은 한다.’

누가 알아달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은근히 그런 눈도장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이런 모습이 꽤 익숙했다.

아픈 동료가 마스크를 쓰고 회사에 와 있으면,

“많이 아픈데도 나왔네.”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비슷한 반응을 예상했다.

그런데 뉴질랜드 회사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집에 가서 쉬는 게 어때?”

내 기침이 계속되자 Manager가 내 자리로 왔다.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You don’t look well. Why don’t you go home and rest?”

사장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집에 가서 쉬라고.

그런데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내 안의 오래된 K-직장인 통역기가 자동으로 작동했다.

‘아, 걱정해주는 말이구나.’

‘실제로 가라는 건 아니겠지.’

‘여기서 진짜 가버리면 눈치 없는 사람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웃으면서 말했다.

“No, I’m okay. I can work.”

내 입장에서는 아주 모범적인 대답이었다.

‘아파도 괜찮습니다. 저는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말을 들은 Manager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지해졌다.

진짜 집에 가라는 말이었다

조금 뒤에 다시 말했다.

“Seriously. You should go home.”

이번에는 사장님까지 비슷하게 이야기했다.

집에 가라고.

쉬라고.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왜 이렇게까지 보내려고 하지?’

‘내가 너무 기침해서 그런가?’

‘혹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나?’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 당시에는 진짜 별생각이 다 들었다.

심지어 순간적으로,

‘나 잘리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했다.

결국 거의 등을 떠밀리듯 가방을 쌌다.

그리고 Manager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Okay… I’ll go home. See you tomorrow.”

그때 돌아온 대답을 아직도 기억한다.

“Of course!”

정말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진짜 가도 되는 거였구나.’

그리고 이상하게도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분명 집에 가라고 해서 가는 건데도, 몰래 조퇴하는 사람처럼 괜히 눈치가 보였다.

집에 와서도 회사 걱정부터 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쉬면서도 자꾸 회사 생각이 났다.

‘내가 오늘 해야 할 거 있었는데.’

‘누가 대신해야 하나?’

‘내가 없어서 일정이 밀리면 어떡하지?’

몸은 침대에 있는데 머리는 계속 회사에 있었다.

다음 날에도 상태가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Manager는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

GP에 가서 진료도 받고 약도 먹었다.

그리고 하루를 제대로 쉬었다.

잠을 자고, 따뜻한 걸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확실히 몸이 좋아졌다.

그때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회사에 계속 앉아 있었으면 나는 도대체 뭘 했을까?’

기침하면서 몇 시간 동안 모니터를 봤겠지만 실제 집중력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아픈 상태로 회사에 계속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감기를 옮길 수도 있었다.

그제야 회사에서 왜 그렇게 나를 보내려고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됐다.

쉬는 것이 오히려 더 책임 있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예전의 나는 아픈데도 출근하는 것을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자리를 지키는 것.

내 일을 끝내는 것.

그게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처음 겪은 이 경험은 그 생각을 조금 바꿔놓았다.

몸이 좋지 않은데 억지로 앉아 있으면 생산성도 떨어진다.

그리고 전염되는 병이라면 다른 팀원까지 아프게 만들 수 있다.

한 사람이 무리해서 출근했다가 여러 사람이 아프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도 훨씬 큰 손해다.

그러니 경우에 따라서는 “오늘은 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책임 있는 판단일 수도 있었다. 이건 나에게 꽤 새로운 생각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쉬는 것보다 죄책감을 버리는 것이었다

병가를 쓰는 방법 자체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더 어려웠던 건 쉬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몸이 아픈데도,

‘내가 너무 약한가?’

‘이 정도로 쉬어도 되나?’

‘사람들이 나를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자동으로 따라왔다. 그런데 회사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아프면, “Take care.” “Get some rest.” 그리고 끝이었다.

며칠 뒤 돌아오면, “How are you feeling?” 이라고 물어본다. 내가 쉬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게 처음에는 정말 낯설었다.

아픈데 회사에 나오는 것이 항상 미덕은 아니었다

물론 뉴질랜드 모든 회사가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회사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직종에 따라 상황도 다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업무상 책임 때문에 갑자기 쉬기 어려운 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회사에서는 아픈 상태로 버티는 것을 성실함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회복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그래도 출근할 수 있나?’ 를 생각했다.

지금은 먼저, ‘오늘 내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인가?’ 를 생각한다.

이 둘은 비슷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꽤 다르다.

지금은 아프면 그냥 아프다고 말한다

이제는 몸이 정말 안 좋으면 아프다고 말한다. 필요하면 쉰다.

예전처럼 한참 고민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고, 거의 허락을 구하듯 이야기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게 굉장히 어려웠다. 오랫동안 ‘참는 것’을 성실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오히려 몸을 관리하는 것도 일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 억지로 버텨서 일주일을 아픈 것보다, 하루 제대로 쉬고 다시 정상적으로 일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해준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픈데도 출근했다고 기특해해줄 거라 생각했던 사장님과 Manager였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회사에 갔는데,

그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책임감이었다.

“오늘은 네 몸부터 챙겨.”

그 당시에는 그 말이 그렇게 낯설었다. 지금은 오히려 아주 당연하게 느껴진다. 가끔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픈데도 모니터 앞에 앉아서,

‘나 참 성실하지?’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의 나라면 그때의 나에게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됐고, 집에 가서 자.”

그리고 내일 좀 나아지면 그때 다시 일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