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wi First'의 높은 벽, 영어가 부족한 이민자가 현지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Kiwi First’의 높은 벽, 영어가 부족한 이민자가 뉴질랜드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영어보다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현지 경력’이다.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어도 뉴질랜드에 처음 오면 다시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나 역시 여러 번 좌절했고, 그 과정에서 현지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다.
한국에서 몇 년을 일했는데, 여기서는 다시 처음부터였다

뉴질랜드에서 구직 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Do you have New Zealand experience?”
처음에는 이 질문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디자인이라는 일이 나라가 바뀐다고 갑자기 완전히 다른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한국에서 했던 경험보다 뉴질랜드에서 몇 달 일한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한국에서 몇 년 동안 프로젝트를 했고, 실제 브랜드를 다뤘고, 포트폴리오도 있는데 이곳에 오니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다.
영어까지 완벽하지 않다면 마음은 더 작아진다.
서류가 떨어지면,
‘영어 때문인가?’
면접에서 떨어지면,
‘내가 질문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나?’
현지 경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도대체 첫 번째 현지 경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야 하지?’
조금 답답한 순환이다.
나 역시 이런 이유로 자신감이 무너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왜 회사들은 그렇게 ‘현지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시간이 지나고 내가 반대편에서 사람을 뽑는 입장도 경험해보니 조금은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다.
현지 경력을 본다는 것이 꼭 외국에서 온 사람의 경력을 무시한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결국 리스크를 줄이고 싶은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실제로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곳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업무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할 가능성이 높고, Reference Check도 상대적으로 쉽다.
특히 팀이 작은 회사라면 한 사람을 잘못 채용했을 때 받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검증된 후보자를 선호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꼭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한다는 뜻은 아니다.
회의에서 의견을 말할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적절하게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했다.
처음에는 영어 실력 자체가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
지금도 회의에서 못 알아듣는 표현이 나오고, 사람들이 빠르게 이야기하면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정리해야 할 때가 있다.
농담을 못 알아듣고 혼자 웃는 타이밍을 놓칠 때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순간마다 내가 굉장히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일을 계속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고, 영어가 조금 부족하다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디자인처럼 결과물이 분명하게 보이는 직업에서는 그 차이가 더 명확했다.
약속한 날짜에 결과물을 내는 것.
작업의 의도를 설명할 수 있는 것.
피드백을 들은 뒤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문제가 생기면 미리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물의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이런 것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도 조금씩 태도가 달라진다.
내 경험에서는 완벽한 영어보다 예측 가능한 프로페셔널리즘이 훨씬 강한 신뢰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배운 업무 방식이 도움이 된 순간도 많았다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뉴질랜드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습관이 꽤 큰 장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마감에 민감한 것.
작은 디테일까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것.
피드백을 받으면 빠르게 수정하는 것.
프로젝트가 여러 개 겹쳐도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처리하는 것.
한국에서 일할 때는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환경에서 일해보니 이런 습관도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일했다고 모두 빠르고 꼼꼼한 것도 아니고, 뉴질랜드 사람들이 느리거나 덜 책임감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회사마다 완전히 다르다.
다만 내가 경험한 두 환경에서 일하면서 생긴 업무 습관들이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는 데 꽤 도움이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해외에 나와서 한국 경력을 너무 쉽게 낮춰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경험을 현지 회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해외 경력은 ‘번역’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번역은 영어 번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유명한 회사 프로젝트를 했다고 해도 뉴질랜드 채용 담당자가 그 회사의 규모나 브랜드를 모를 수 있다.
그렇다면 회사 이름만 적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대형 소비재 브랜드의 패키지 리뉴얼을 담당했다.”
“전국 유통 채널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브랜드 디자인을 진행했다.”
“여러 부서와 협업하며 캠페인을 기획하고 디자인을 실행했다.”
이런 식으로 내가 했던 일의 규모와 책임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포트폴리오도 마찬가지다.
예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그 프로젝트를 했는지, 내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보여줘야 한다.
한국에서는 다들 아는 브랜드라 한 줄이면 설명되던 프로젝트도 해외에서는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 억울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상대방은 내가 살아온 시장을 모르니까.
처음 한 번의 기회가 가장 어려웠다
내가 느끼기에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뉴질랜드 경력이 전혀 없을 때였다.
한 번 현지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Reference가 생기고, 실제 프로젝트가 쌓이기 시작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이전 회사 사람들이 내 업무 방식을 설명해줄 수 있고, 이곳에서 실제로 진행한 프로젝트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벽한 회사만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Contract나 단기 프로젝트도 도움이 될 수 있고, Freelance 프로젝트 하나가 현지 Reference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현지 경험을 어떻게든 만드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자신의 가치를 무조건 낮추라는 의미는 아니다.
‘해외 경력이 없으니까 아무 조건이나 받아들여야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처음에는 현실적으로 타협하더라도, 내가 왜 이 선택을 하는지 목적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Kiwi처럼 보이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예전에는 내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키위처럼 말하고, 키위처럼 행동해야 하는 줄 알았다.
영어 발음도 더 자연스러워야 하고, Small Talk도 잘해야 하고, 그들의 문화 안에 완전히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물론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다른 배경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른 시장에서 일했던 경험과 다른 관점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차이가 팀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기본적인 것은 아주 단순했다.
약속한 일을 하는 사람.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하는 사람.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 사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되 자기 생각도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평판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이민자’라는 설명보다 그냥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먼저 나오기 시작한다.
이민자라는 사실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먼저 보이는 순간
뉴질랜드 취업 시장에서 현지 경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현실은 분명히 있다.
영어가 부족하면 처음에는 불리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 벽 때문에 많이 좌절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벽을 넘은 방법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만드는 것도, 내가 한국에서 쌓은 경험을 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내 경험을 이곳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결과로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를 다음 기회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꽤 걸렸다.
솔직히 지금도 모든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보다 **“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민자로 해외에서 커리어를 만든다는 것은 그런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내 배경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까지 포함해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해가는 것.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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