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 Designer in New Zealand
🇳🇿 Designer in New Zealand | AI · Branding · Packaging · K-직장인 - New articles every week

타스만해를 건넌 거대 자본… 'Proudly NZ' 마크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이유

'Proudly NZ' 마크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이유

호주에 갔다가 알게 된 것, ‘Proudly NZ’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에서 패키지 디자인을 하면서 수없이 사용했던 ‘Proudly Made in New Zealand’. 예전에는 로컬 브랜드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문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호주 여행 중 너무나 익숙한 브랜드들을 계속 마주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뉴질랜드에서 ‘로컬 브랜드’라는 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호주에 갔는데 이상하게 여행 온 것 같지가 않았다

얼마 전 잠시 쉬려고 호주에 다녀왔다.

그런데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왔는데 낯설지가 않았다.

쇼핑센터를 가도 그렇고, 마트에 가도 그렇고, 길을 걷다가 보이는 브랜드들도 너무 익숙했다.

Kmart가 있고, Bunnings가 있고, Woolworths가 있다.

처음에는 그냥 호주와 뉴질랜드가 가까운 나라니까 당연한가 보다 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돌아다니다 보니 조금 웃기기까지 했다.

“잠깐만, 나 지금 여행 온 거 맞나?”

오클랜드 어느 동네에서 장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Bunnings와 Kmart를 봤을 때는 묘했다.

너무 오랫동안 뉴질랜드에서 일상적으로 이용해서인지 나는 이 브랜드들을 거의 뉴질랜드 생활의 일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주에 와서 훨씬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럼 내가 뉴질랜드 브랜드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실제 뉴질랜드 브랜드는 얼마나 될까?

여행 중에 이런 걸 굳이 찾아보는 것도 좀 웃기지만, 한번 궁금해지니 계속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됐다.

너무 익숙해서 뉴질랜드 브랜드라고 생각했던 것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은행이었다.

ANZ, ASB, BNZ, Westpac.

뉴질랜드에 살면 너무나 일상적으로 접하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은 이 네 곳을 명확하게 **‘four large Australian-owned banks’**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네 은행이 뉴질랜드 전체 은행 대출의 약 84%를 담당한다.

나는 이걸 알고 조금 놀랐다.

물론 뉴질랜드에서 운영되는 회사이고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외국 회사’라고 잘라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소유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NZ는 말 그대로 Australia and New Zealand Banking Group이고, ASB의 모기업은 Commonwealth Bank of Australia, BNZ는 National Australia Bank 계열이다. Westpac 역시 호주계다. 뉴질랜드 중앙은행도 이 구조를 오래전부터 명확하게 설명해왔다.

마트도 비슷했다.

내가 여전히 습관적으로 Countdown이라고 부르는 Woolworths New Zealand도 호주의 Woolworths Group에 속해 있다. Woolworths Group은 현재 뉴질랜드에서 185개가 넘는 슈퍼마켓을 운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전혀 비밀도 아니다.

그냥 내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매주 장을 보고, 은행 앱을 열고,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도 그 브랜드가 실제로 어디에서 시작됐고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호주에 직접 가서 똑같은 브랜드를 계속 마주치고 나서야 그게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뉴질랜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뉴질랜드 것이 아니었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것 역시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깊게 연결되어 있다.

기업이 국경을 넘어서 운영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호주 기업이 뉴질랜드에서 사업을 하고, 뉴질랜드 사람들이 그 회사에서 일하고, 뉴질랜드 공급업체와 거래하고, 여기에서 세금을 내고 경제 활동을 한다.

그러니 로고의 국적 하나만 보고

‘우리 것 / 남의 것’

으로 정확하게 나누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이 경험 이후 한 가지는 확실히 달라졌다.

뉴질랜드에서 **‘NZ Owned’**라고 이야기하는 브랜드가 왜 그 사실을 굳이 강조하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예전에는 솔직히 마케팅 문구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다.

다시 돌아와 보니 ‘Proudly NZ’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여행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패키지 작업을 하면서 익숙한 문구를 다시 보게 됐다.

Proudly Made in New Zealand.

평소 같으면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디자인 안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고, 크기를 조정하고, 다른 정보들과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내 일이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뉴질랜드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에서 로컬 기업이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망을 확보해서 대형 브랜드와 같은 진열대에서 경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떤 회사에게 **‘Made in New Zealand’**나 **‘NZ Owned’**는 단순히 감성적인 문구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시작한 회사입니다.’

소비자에게 그런 선택의 이유를 하나 더 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걸 로컬에 대한 자부심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거기에 비즈니스적인 의미도 꽤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디자이너에게는 이 차이가 꽤 중요하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건 Made in New Zealand, New Zealand Owned, New Zealand Brand가 사실 모두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졌지만 해외 자본이 소유한 회사일 수도 있고,

뉴질랜드 사람이 소유한 회사지만 제품은 해외에서 생산할 수도 있다.

뉴질랜드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나중에 해외 기업에 인수될 수도 있다.

소비자가 보기에는 전부 비슷한 ‘NZ 브랜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 구분이 중요하다.

패키지에 들어가는 작은 문장 하나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이 사실이어야 하고,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의미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Proudly NZ 같은 표현을 볼 때 예전보다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정확히 무엇을 Proudly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생산지인가?

소유권인가?

원재료인가?

아니면 브랜드가 시작된 곳인가?

이 질문에 따라 패키지가 전달해야 하는 이야기도 달라진다.

‘로컬’을 디자인한다는 것

예전의 나는 뉴질랜드산이라는 표현을 꽤 감성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깨끗한 자연, 작은 커뮤니티, 로컬 생산자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지금도 그런 감정은 있다.

다만 호주를 다녀온 뒤에는 그 뒤에 있는 비즈니스도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거대한 시장이 아니다.

그리고 같은 진열대에서 경쟁하는 브랜드 중에는 훨씬 큰 자본과 유통망을 가진 기업들도 많다.

그 안에서 작은 로컬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발견되어야 하고,

왜 이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고,

그 브랜드만의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디자인이 할 일이 생긴다.

로컬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촌스럽거나 소박하게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글로벌 브랜드처럼 보이려고 자기 이야기를 지울 필요도 없다.

작은 브랜드가 가진 이유를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

요즘 나는 그것이 로컬 브랜드 디자인에서 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Proudly’라는 단어를 조금 더 오래 보게 된다

호주 여행을 가기 전과 후로 내가 디자인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로고 크기를 조정하고, 타이포그래피를 보고, 패키지의 앞뒤 정보를 정리한다.

하는 일은 똑같다.

그런데 작은 문구 하나를 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Proudly Made in New Zealand.

예전에는 그 문장의 New Zealand가 먼저 보였다면,

지금은 이상하게 Proudly라는 단어가 더 오래 눈에 들어온다.

무엇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인지.

왜 이 브랜드는 그것을 소비자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디자이너인 나는 그 이유를 어떻게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지.

호주에 잠깐 여행을 갔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그런 질문을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어쩌면 디자인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작은 단어 하나가,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