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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영어보다 더 어려웠던 ‘수다 영어’, 뉴질랜드 직장에서 배운 Small Talk

일만 잘하는 기계 대신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는 스몰 토크론

업무 영어보다 더 어려웠던 ‘수다 영어’, 뉴질랜드 직장에서 배운 Small Talk

뉴질랜드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건 역시 영어였다. 회의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전화가 오면 어떡하지. 내 디자인을 영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업무 영어보다 ‘수다 영어’가 훨씬 어려웠다. 업무 이야기는 오히려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디자인에는 익숙한 단어들이 있고, 모르면 다시 물어보면 된다. 이메일은 읽어보고 천천히 답할 수도 있다.

그런데 Small Talk는 달랐다. 빠르다. 갑자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뉴질랜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회의실보다 점심시간과 월요일 아침이 더 무서웠다.

출근했는데 일을 안 하고 계속 이야기한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꽤 놀랐던 장면이 있다. 아침에 사람들이 출근한다.

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자, 오늘 할 일이 뭐지?’

그런데 주변에서는 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Morning!” “How was your weekend?” “어제 어디 갔어?” “그 옷 예쁘다. 어디서 샀어?”

누군가는 주말에 캠핑 갔다 온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어제 본 Netflix 이야기를 한다. 한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으면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정말 신기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일은 언제 시작하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내 머릿속에는 출근하면 일단 컴퓨터부터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잡담은 점심시간이나 커피 마실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경계가 생각보다 흐렸다.

일하다가도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가지러 갔다가 10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의 생일이면 또 한참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대화에 끼고 싶어도 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내가 그 대화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끼고 싶었다.

그런데 못 끼었다.

영어가 너무 빨랐다.

한 명과 이야기할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세 명, 네 명이 동시에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난이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누군가는 Kiwi accent로 빠르게 이야기하고,

중간에 내가 모르는 표현이 나오고,

갑자기 모두 웃는다.

나는 아직 앞 문장을 해석하고 있다.

‘잠깐… 뭐가 웃긴 거지?’

그러는 사이 이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도 뭔가 말하고 싶어서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든다.

‘Okay, 지금 말하면 되겠다.’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한다.

타이밍을 놓친다.

다시 기다린다.

또 타이밍을 놓친다.

결국 웃기만 한다.

아마 해외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기분을 알 것 같다.

회의에서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과는 또 다른 외로움이다.

그래서 그냥 일만 했다

어느 순간 나는 아주 편한 방법을 찾았다.

그냥 일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나는 모니터를 본다.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Photoshop을 한다.

누군가 주말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이메일에 답한다.

‘그래. 나는 영어 대신 일로 보여주자.’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도 빨리 끝났다.

문제는 가끔 너무 외로웠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웃고 떠드는데 나 혼자 모니터를 보면서 기계처럼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 서글펐다.

사람들이 나를 일부러 빼놓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계속 말을 걸어줬다.

그런데 내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정말 많이 생각했다.

‘아… 나도 영어 잘해서 저기 끼고 싶다.’

영어 공부하면서 이런 순간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IELTS에도 ‘월요일 아침에 동료의 주말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기’ 같은 문제는 없으니까.

업무 영어와 Small Talk 영어는 정말 달랐다

이건 뉴질랜드에서 일하면서 꽤 크게 느낀 부분이다.

업무 영어에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가 있다.

디자이너라면,

deadline,

artwork,

feedback,

revision,

approval,

brief 같은 단어들을 계속 사용한다. 내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Small Talk는 범위가 없다.

어제 먹은 음식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아이 학교 이야기로 넘어가고, 거기서 집값 이야기로 갔다가, 누군가의 남편 이야기로 넘어가고, 갑자기 Rugby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에 슬랭과 농담까지 섞인다. 나는 정말 한동안 업무 미팅보다 점심시간 대화가 더 어려웠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외국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영어와 외국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필요한 영어는 조금 다르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Small Talk가 왜 중요한지도 조금 알게 됐다

처음에는 솔직히 잡담이라고 생각했다.

일과 상관없는 이야기.

업무시간을 잡아먹는 이야기.

그런데 오래 같이 일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된다.

누가 아이가 있는지,

누가 강아지를 키우는지,

누가 캠핑을 좋아하는지,

누가 요즘 집을 고치고 있는지.

별것 아닌 정보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사람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업무에서도 그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평소에 편하게 이야기하던 사람에게는 업무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말을 꺼내기가 쉽다.

“이거 일정이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부담이 줄어든다.

그때부터 Small Talk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일을 안 하고 노는 시간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구나.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원래 일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과물을 잘 만들고,

마감을 지키고,

요청에 빠르게 대응하면 된다.

물론 지금도 그게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팀에서 오래 일하려면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할 때가 있다.

결국 회사에서 우리는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

그러니 사람들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하고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한다.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르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말을 걸기 어렵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항상 혼자 떨어져 있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도 편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주말 잘 보냈냐고 한마디 물어보고,

누군가 이야기할 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조금씩 팀 안으로 들어간다.

나에게는 이게 꽤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수다쟁이가 될 필요는 없었다

처음에는 Small Talk를 잘하려면 나도 키위들처럼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면 됐다.

월요일 아침이면,

“How was your weekend?”

누군가 새 옷을 입고 오면,

“I like your outfit.”

휴가에서 돌아온 사람에게는,

“How was your trip?”

그 정도였다.

중요한 건 완벽한 영어가 아니었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작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한두 마디가 쌓이면 그다음 대화는 조금씩 쉬워진다.

상대방도 내가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천천히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도 알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편해졌다.

지금도 나는 수다보다 일이 편하다

뉴질랜드에서 일한 시간이 꽤 지났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나는 수다보다 일이 편하다.

해야 할 일이 많으면,

‘우리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일하면 안 될까…’ 속으로 생각할 때도 있다.

내 안의 K-직장인은 아직 살아 있다.

그런데 예전처럼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혼자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다.

잠깐 이야기하고, 웃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서 일한다. 그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돌아보면 내가 뉴질랜드 직장에 적응했다고 느낀 순간은 영어로 완벽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날도 아니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날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월요일 아침,

누군가 나에게

“How was your weekend?”

이라고 물었을 때,

머릿속으로 문법을 만들지 않고 그냥 주말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순간.

아마 그때부터 조금씩 이곳의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해외취업을 준비하면서 영어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면 업무 영어만 준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실제 회사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문장은 거창한 비즈니스 영어가 아니라,

“How was your weekend?” 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