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의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사무실에 흐르는 적막함 속에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마우스 클릭 소리만 가득하죠. 메신저로 대화는 할지언정, 입을 열어 대화를 나누는 건 점심시간이나 남자들은 담배 한 대 피우러 갈 때, 혹은 탕비실 커피 타임이 전부입니다. '업무 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미덕이니까요.
하지만 뉴질랜드(KIWI)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여기는... 회사가 아니라 무슨 동네 사랑방인 줄 알았습니다.
1. 눈만 마주치면 스타트! 끝없는 수다의 지옥(?)
특히 제가 일하는 곳이 여직원들 위주의 사무실이라 그런지 몰라도, 키위들의 수다 본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출근부터 눈만 마주치면 대화가 시작됩니다.
- 출근 직후: "오! 오늘 입은 옷 너무 예쁘다! 어디서 샀어?"
- 오전 업무 중: "어제 저녁에 뭐 먹었어? 난 넷플릭스에서 그거 봤는데..."
- 오후 업무 중: "주말에 뭐 할 거야? 날씨 좋다는데 캠핑 갈까?"
한국 같으면 이미 부장님한테 "거기 좀 조용히 하고 일합시다!" 하고 쿠사리(?)를 먹었을 텐데, 여기는 다들 깔깔거리며 수다 삼매경입니다.
2. 영어는 안 들리고, 나 혼자 '프로 열일러'가 되던 날들
처음 뉴질랜드 직장에 들어왔을 때는 영어도 완벽하지 않고 이런 붕 뜬 분위기도 너무 어색했습니다. 대화에 끼고 싶어도 타이밍을 못 잡겠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벅찼죠. 업무때의 영어와, 수다때의 영어는 또 다른 외계어 같더라구요.
결국 제가 선택한 건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기'였습니다.
'그래, 나는 할 일이나 빨리 끝내자.'
마음속으로는 '빨리빨리 인형'처럼 손을 바쁘게 움직였지만, 속으로는 참 쓸쓸했습니다. 나 빼고 다들 즐겁게 웃고 떠드는데, 나 혼자 기계처럼 일만 하고 있는 그 모습이 스스로 너무 싫었거든요. "나도 영어 잘해서 저 틈에 껴서 같이 수다 떨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3. 쟤네는 수다 떨면서 일은 언제 다 하지?
'빨리빨리'가 뼈에 새겨진 한국인 관점에서 이들의 수다는 시간 낭비처럼 보였습니다. '저러다 오늘 야근하는 거 아냐?' 싶었죠.
한국 같으면 "그렇게 노가리 까다가 야근할 줄 알았다"며 등짝 스매싱을 맞을 텐데, 왜 얘네는 야근을 할지언정 이토록 수다에 목숨을 걸까요?
뉴질랜드 직장 문화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 과정은 자유롭게, 결과는 확실하게: 수다를 떨든 커피를 마시든 터치하지 않습니다. 단, 본인에게 주어진 업무량(KPI)은 마감 전까지 완벽하게 끝내야 합니다. 못 끝내면? 그건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고 무능력한 게 되니까요.
- 스몰 토크(Small Talk)도 업무의 일부: 서양권에서는 사소한 수다를 통해 동료 간의 유대감과 신뢰를 쌓는 것을 아주 중요한 '협업 능력'으로 봅니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일만 하는 사람은 오히려 '비협조적이거나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 '빨리빨리'와 '수다' 그 사이 어디쯤
솔직히 고백하자면, 뉴질랜드 생활 몇 년 차인 지금도 저는 여전히 이 문화가 100% 적응되진 않습니다. 제 DNA 속 'K-직장인 패치'는 아직도 "빨리 집중해서 일 끝내고 쉬자!"라고 외치고 있거든요. 수다 떨 시간조차 아까울 때가 많으니까요.
혹시 해외 취업 후 사무실의 폭풍 수다 속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계신 분이 있나요? 슬퍼하지 마세요! 그들이 말이 많은 건 여러분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문화일 뿐입니다. 오늘부터는 옆자리 동료의 옷차림에 "Nice outfit!(오늘 옷 예쁘다!)" 한마디 툭 던지며 서서히 스며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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