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운전해 본 분들이라면, 혹은 조수석에 타 본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악명 높은(?) 멘트가 있습니다.

도로 위에서 얄밉게 운전하거나 실수를 하는 여성 운전자를 향해 날아오는 단골 비하 발언, 바로 이 말이죠.

"아니, 아줌마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왜 차를 끌고 나와서 난리야?!"

물론 절대 해서는 안 될 차별적인 말이지만, 도로 위 분노(Road Rage)가 극에 달했을 때 한국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머나먼 남반구 뉴질랜드에서도 이와 정확히 100% 일치하는 영어 표현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사람 속 터지는 포인트와 욕하는 방식은 세계 공통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죠.


아들의 Playdate, 그리고 도로 위의 시비

하루는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 친구와 함께 '플레이데이트(Playdate, 아이들끼리 만나서 노는 것)'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운전은 친구 엄마가 해주고 계셨죠.

뉴질랜드 도로는 한국에 비해 한적한 편이지만, 출퇴근 시간이나 좁은 라운드어바웃(회전교차로) 근처에서는 가끔 신경전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날도 친구 엄마가 운전을 하던 중, 옆 차선의 차량과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고 합니다. 상대방 차가 무리하게 끼어들었거나 깜빡이를 켜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평소에는 한없이 친절하고 우아했던 친구 엄마의 미간이 찌푸러지더니, 닫힌 창문 너머 상대 차량을 향해 거침없이 한마디를 내뱉으셨습니다.

"집에서 쿠키나 구울 것이지!"

나중에 집에 돌아온 아들이 차 안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쫑알쫑알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저는 그 대사를 듣자마자 밥을 먹다가 뿜을 뻔했습니다. 친구 엄마가 소리친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Oh, come on! That old lady should stay home and bake some cookies!!"

 (아니! 저 할망구가 집에서 쿠키나 만들 것이지 왜 기어 나와서 난리야!)

▲ 뉴질랜드 사람들도 평소엔 이렇게 젠틀하고 평화롭지만, 도로 위에선 K-운전자 못지않은 본능(?)이 깨어납니다.

한국의 "집에서 밥이나 해라"가 뉴질랜드로 오니 "집에서 쿠키나 구워라(Bake some cookies)"로 로컬라이징(?) 된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부의 가사 노동을 비하할 때 '밥'을 언급한다면, 서양권(특히 영미권)에서는 할머니나 주부들이 집에서 구워내는 '쿠키'나 '파이'를 빗대어 말한다는 게 정말 기가 막히게 신선하면서도 웃겼습니다.

언어는 달라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배를 잡고 웃다가, 문득 묘한 안도감(?)과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다 여유롭고 화도 안 내는 줄 알았더니, 여기도 운전대 잡으면 다 똑같구나.' '사람 사는 세상은 국경을 불문하고 다 비슷비슷하구나.'

💡 도로 위 평화를 바랍니다!

언어와 인종, 문화의 장벽이 아무리 높아 보여도 결국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희로애락과 본성은 참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하루였습니다. 뉴질랜드 키위(Kiwi) 엄마의 입에서 나온 "쿠키나 구워라"라는 말은 한동안 제 최애 유머 코드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이든 뉴질랜드든, 도로 위에서 성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를 비하하는 말은 자제해야겠죠? 오늘도 전 세계 도로 위에서 핸들을 잡고 계신 모든 운전자분들, 대인배의 마음으로 안전 운전하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는 고소한 초코칩 쿠키나 좀 구워볼까 봐요. 허허.)